이동 삭제 역사 ACL 마이클 조던/생애 (r2 문단 편집) [오류!] 편집기 RAW 편집 미리보기 굵게기울임취소선링크파일각주틀 == 두 번째 3연패와 두 번째 은퇴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500><table bordercolor=#d4001f><#ffffff>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mages.solecollector.com/gtxp0lhys0wpghjob7xw.jpg|width=100%]]}}} || 복귀 후 치른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올랜도에 패배를 당한 이후 와신상담한 조던은 신인 시절보다 더 빡센 트레이닝을 거쳤다. 당시 연습에 대해 "전쟁이었다"는 후문이 전해질 정도. 95-96 시즌, 팀은 FA로 이적한 호레이스 그랜트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당시 감독과의 불화로 팀에서 겉돌고 있던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데니스 로드먼]]을 영입한다. 당시만 해도 로드먼을 잘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걱정과 주전 라인업이 너무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냐 하는 우려가 많았지만, 이 해 이들은 '''72승 10패라는 당시 NBA 역대 최고 승수를 기록'''[* 15-16시즌,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73승 9패로 이 기록을 경신하였으나 우승은 하지 못했다. 1995-96 시즌 시카고 불스가 플레이오프 포함 87승 13패를 했으나 15-16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화려한 정규 시즌에 비해 플레이오프에서는 상대적으로 부진해 그 해 88승 19패를 하였다.]하였다. 조던이 득점왕, 로드먼이 리바운드왕에 [[토니 쿠코치]]가 식스맨상을 수상했고, 올-디펜시브 퍼스트 팀에 조던, 피펜, 로드먼 세 명이나 올라가기도 했다. 이 해 파이널에서 만난 것은 [[숀 켐프]]와 [[게리 페이튼]]이 이끌던 시애틀 슈퍼소닉스였는데, 당시 조던은 등 부상을 입어 제 컨디션이 아니었으며 평균 득점도 가장 낮았다.[* 이 시리즈 평균 득점이 27.3점이었다. 조던의 파이널 평균 득점은 33.6점.] 그럼에도 3연승 이후 두 경기 내주고 다시 시카고로 돌아와 우승한다. 조던이 우승을 결정지었던 파이널 6차전은 아버지의 날에 펼쳐졌다.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공을 껴안고 코트에 쓰러져 흐느끼는 조던의 모습은 그의 하이라이트 중 빠지지 않는 장면. 여담이지만 이때 함께 공을 껴안고 있는 랜디 브라운이 함께 공을 꽤 오래 잡고 있었는데, 상황을 파악하고 공을 놔줬다. 만약 놓지 않았다면 [[보싱와]] 취급을 받을 뻔 했다.(...) 자세히 보면 베테랑 존 샐리가 비키라고 브라운의 등을 계속 치는 걸 볼 수 있다. 하도 어이없는 행동이라 왜 브라운이 이런 바보짓을 했는지 미국에서도 수수께끼였는데, 2020년 5월에 랜디 브라운이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그 사연을 밝혔다. [[https://clutchpoints.com/bulls-news-why-michael-jordan-had-to-wrestle-ball-away-from-teammate-after-winning-1996-finals/|#]] 브라운 왈,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거지만 마이클이 절 받아줬고 제게 '첫 우승은 시카고, 고향에서 시켜줄게'라고 했어요." 당시 무명의 가드였던 브라운은 비록 기량은 형편없었지만 탁월한 운동능력으로 팀 내에서 나름 중요한 역할 (작고 재빠른 가드를 막는 역할)을 했다. 원문에서 take under one's wings라고 하면 마치 제자처럼 데리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가르쳐줬다는 소리이다. "그(조던)은 제가 비록 그처럼 재능은 없지만 그만큼 승부욕이 강하다는 사실을 맘에 들어했어요. 그래서 제가 파이널의 게임볼을 서로 잡고 있었던 겁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경쟁심을 불태우는 거였죠. 결국 제가 정신을 차리고 경기가 열린 날이 아버지의 날이라는 거, 그리고 마이클이 그 순간을 즐길 권리가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 장면은 위에서 찍은 모습만 알려져있지만 링크된 기사에 첨부된 옆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조던은 감정에 북받혀 표정이 일그러져 있는데 위의 브라운은 '''웃고 있다'''. 종합하자면 브라운은 6차전 경기일이 아버지의 날이라는 걸 모르고 경기가 종료되고 마이클이 게임볼을 부여잡자 게임볼을 차지하려는 것인 줄 알고 농담반진담반으로 승부욕을 불태우며 뺏겠다고 장난식으로 덤벼든 것이다. 즉, 농구전설이 일생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 중 하나에 감정이 폭발해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오열하는데 후배가 상황파악 못 하고 눈치없이 장난을 건 셈. 그나마 뒤늦게라도 정신을 차리고 비켰으니 망정이지 끝까지 안 비키거나, 공을 뺏어서 도망가거나 관중석으로 던지는 등 뻘짓을 했으면 정말 두고두고 욕을 먹었을 것이다. 어찌보면 (정신 못 차리고 사고 쳤다면) 악명높은 보싱와보다 더 심한 케이스였을 것인데, 빅이어 사건도 프랜차이즈의 역사에 남을 순간을 망친 거지만 브라운 케이스는 프랜차이즈 역사를 망친 것도 모자라 '''마이클 조던 본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를 망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table align=center><table width=700><table bordercolor=#d4001f><#ffffff>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MJ_FatherDay.jpg|width=100%]]}}} || ||<#d4001f><:> {{{#ffffff '''“아버지의 날”''' }}} || 조던은 모든 결정을 아버지와 함께 하고 어디든 함께 다닐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었다. 1차 은퇴 당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버지가 제 마지막 경기를 보셨다는 겁니다"라고 할 정도로. 그만큼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야구하면서 극복하고, 결국 돌아와 새로운 도전과제(복귀해 우승)에 성공했는데 하필 그걸 아버지의 날에 했다는 것은 엄청난 의미가 있었고, 이 때문에 [[마이클 조던 - 더 라스트 댄스]]를 보면 라커룸에서 조던이 쓰러져 정신 못 차리고 오열하는 걸 들을 수 있다. 관중들이 MVP 챈트를 하는 가운데 조던은 울먹이며 "아버지께서 보고 계실 거다. (이 승리를) 아버지께 바친다(I know he's watching. This is for dad)"라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조던은 96-97시즌을 앞두고 불스와 1년 3천만달러에 계약하며 한 시즌 연봉으로는 역대 최고액 기록을 세운다. 이건 불스의 삽질 탓으로, 시카고 프런트의 뜨뜻미지근한 태도에 빡친 조던과 에이전트 포크스는 당시 그에게 2500만달러를 오퍼한 뉴욕 닉스를 거론하며 '''한 시간 안에''' 닉스보다 좋은 계약을 안 하면 뉴욕과 계약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이때 만약 뉴욕으로 갔다면 절친 패트릭 유잉과 같이 뛰었을텐데, 당시 뉴욕의 전력과 올-NBA 세컨드 팀에 오른 유잉의 실력, 이해부터 로드맨이 본격적으로 노화가 심해졌다는 것 (플레이오프 통틀어 평균 한자리수 리바운드)을 생각하면 불스에서보다 닉스에서 더 무서웠을 가능성이 높다. 현실적으로 이해 합류한 앨런 휴스턴, 래리 존슨은 영입 못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어차피 존슨은 이때 부상 이후 기량 저하와 애매한 롤로 큰 역할은 못했고 (12점 5리바운드), 휴스턴이 조던으로 대체되는 꼴. 게다가 평생 위력적인 2옵션, 골밑득점원과 뛰지못한 조던이 '''유잉과''' 뛴다면 수비가 분산되어 물만난 고기처럼 골밑을 휘저을 수 있고 당시 짧은 3점 슛 라인에서 외곽을 퍼부을 수도 있다. (조던은 96시즌에 3점 슛 성공률 40%, 97시즌엔 38%를 기록) 반대로 유잉은 2옵션으로 조던에게 수비가 몰린 틈을 타 장기인 중거리슛이나 포스트업 득점으로 편안히 득점 가능하다. 게다가 가드 최강 수비수인 조던+최고레벨의 골밑 수비수인 유잉+터프한 블루컬러워커 오클리의 조합이라면...당시 연봉 1, 2위가 같이 받는 4천만 불을 넘는 연봉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이건 '''뉴욕''' 닉스다. 물론 실제 이적이 이뤄지지 않았으니 가정일 뿐이다. 1996-97 시즌에도 69승 13패라는 고승률을 거두며[* 1995-96 시즌 그들이 최고 승률 기록을 세우기 전의 기록인 [[윌트 체임벌린]]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 동률의 기록이다.] 1997 파이널에 진출, [[칼 말론]]과 [[존 스탁턴]]이 이끄는 유타 재즈를 상대하였다. 이때 MVP투표에서 근소한 차이(63표vs52표)로 잠깐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 69승팀의 에이스이자 리그 최고의 선수였음에도 MVP를 타지 못했기 때문. 조던이 뛰어났지만 전 시즌에 비해 개인기록과 팀성적에서 소폭 하락했고, 당시 유타를 역대최고인 64승으로 이끈 말론이 한 번쯤 탈 때가 되었다는 여론이 우세했다. 실제로 언론인들로 이뤄진 MVP 투표단은 해당 선수의 실력 뿐 아니라 성과, 전년도 대비 성적을 크게 보며, 이 때문에 3연속 MVP를 수상하기는 굉장히 어렵다.(1985-86 시즌 [[래리 버드]]가 마지막)[* 역사상 통틀어 버드와 [[빌 러셀]], [[윌트 체임벌린]] 세 명이 전부인데, 러셀과 체임벌린은 선수들이 MVP 투표를 하던 시기 수상자들이기 때문에 현 시스템(스포츠 언론인들의 투표)으로 바뀐 후 3연속 수상자는 버드 뿐이다. 압도적인 선수가 있을 경우 보통 MVP 2연패까지는 많이 가는데, 버드는 세 번째 해에 개인기량도 압도적이었고 셀틱스가 67승을 거두며 그의 커리어 최고 팀성적은 물론 1980년대 통틀어 최고 성적을 거뒀기 때문에 안 줄 수가 없었다. 실제로 이 때 획득가능 1위표 78표 중 73표를 받으며 무난히 수상했다. 즉 3연속 MVP를 타려면 독보적인 실력을 지닌 선수가 3년 연속으로 건강히 뛰며 뛰어난 실적을 올리고, 3년 연속으로 팀이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특히 세 번째 해에 유독 돋보이는 성적을 내야한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이를 반복한 선수는 없는 것이다. 조던 본인의 경우 93시즌엔 팀성적이 삐긋(67승->57승)했고, 2000년대에 팀 던컨과 스티브 내쉬는 애초부터 그렇게까지 독보적인 MVP는 아니었으며, 2010년대 르브론 제임스도 마찬가지로 팀성적이 크게 떨어졌고(66승->54승), 2021년의 야니스 아데토쿤보도 승률이 떨어졌다(단축시즌이라 승률로 대신/승률 76.7%->63.9%)] 다만 선수들의 투표로 이뤄진 스포팅 뉴스 '올해의 선수' 투표에선 조던이 102표, 말론이 27표를 얻어 압도적으로 조던이 승리했다. 당시 투표는 오직 둘만의 레이스였는데 실제로 당시 둘을 제외하고 1위표를 받은 선수는 아무도 없었으며, 1위자리에 둘 중 하나를 써넣지 않은 투표단 대부분이 2위 자리엔 둘 중 하나의 이름을 썼기 때문에 실제 점수는 986vs957로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였다. 원래 1위표 득표수만 공개되지만, MVP투표는 1위부터 10/7/5/3/1점을 주기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추산해보면 말론은 1위표 63표에 나머지 투표단 52명 중 50명으로부터 2위표(350점),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은 3위표를 줬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또한 조던을 1위로 뽑지 않은 투표단은 63명인데 이 중 62명에게 2위표를 받았다고 가정하면 남는 점수는 3점이 된다. 즉, 조던은 62명에게 2위표를 받고 나머지 한 명은 조던에게 4위표를 줬다고 추정할 수 있다. * 여담이지만 MVP투표단은 리그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이기 때문에 아무 기자나 투표권을 얻는것도 아니고 미국의 수많은 스포츠 언론인 중에서 수십년의 경험과 그에 맞는 전문성, 신뢰도가 있는 사람들만이 투표권을 얻는다.(투표단 수는 정해져있지 않으나 보통 100명 이상이며, 많아도 130명을 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수십년간 스포츠 언론인 생활을 해왔으며 ESPN에서 이빨을 열심히 터는 스킵 베일리스나 스티븐 A 스미스는 투표권이 없다. 반면 터너 스포츠의 터줏대감 어니 존슨이나 NBA 2K시리즈로 익숙한 도리스 버크는 투표권이 있다.] 참고로 79-80시즌까진 선수들의 투표로 뽑았다. 그런데 이 권위자들이 가끔 가다 이상한 투표를 하는 경우가 있다. 2004-05시즌 당시 투표단 중 두 명은 커리어 통틀어 단 한 번의 올스타 이력도 없는 PJ브라운과 마커스 캠비에게 5위표 하나씩을 선사했으며, 00-01시즌 당시 39세가 가까워 경기가 29분 밖에 못 뛰면서 11.5점 8.7어시스트를 기록한 [[존 스탁턴]]도 5위표 하나를 받았다. 99-00시즌 당시 [[샤킬 오닐]]이 만장일치 MVP가 못 된 이유가 "팀 내에서 그를 대체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다"는 이유로 1위 자리에 오닐이 아닌 [[앨런 아이버슨]] 이름을 써넣은 웬 기자 때문이란 건 유명한 얘기. 97시즌의 예로 들면 누군가는 53경기 밖에 출정하지 못한 [[찰스 바클리]]에게 5위표 한장을, 좋은 선수긴 했지만 올스타에도 못 뽑힌 앤서니 메이슨, 마찬가지로 올스타가 아니었던 '''루키''' 아이버슨도 5위표 한장을 받았다. [* 물론 위에 언급된 선수들은 모두 좋은 선수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해당 시즌 활약이 MVP 투표 5위 안에 들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스탁턴은 좋은 선수지만 저때 그는 은퇴가 가까웠으며 올스타에 못 뽑힌지도 4년째가 된 하락세의 노장이었고, 브라운과 캠비는 커리어 롤플레이어, 1999-00 시즌의 아이버슨은 올-NBA 세컨드 팀에 든 슈퍼스타였지만 이때 그가 역사상 최고의 퍼포먼스 중 하나로 거론되는 1999-00 시즌 오닐의 활약보다 좋은 시즌을 보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스포츠에서 완전히 객관적인 선수평가란 있을 수 없으며 평가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NBA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을 수여할 때는 그나마 가장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야하며, 이 때문에 투표단의 기준을 높게 잡아 가장 권위있고, 전문성이 높은 사람들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객관성을 유지해야 할 투표단이, 아무리봐도 개인취향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기준으로 투표를 하는 것에 대해선 고개가 갸웃거려질 수 밖에 없다. 97시즌 마이클 조던의 활약상이 리그에서 4번째였다거나, 99-00시즌 아이버슨이 오닐보다 더 잘했다고 하는 건 전문적이거나 객관적인 판단이라고 보기 힘들다. 불스 홈에서 열린 1차전부터 양 팀은 박빙의 접전을 벌였는데, 4쿼터 종료 직전 82-82 동점상황에서 칼 말론이 중요한 자유투를 얻게된다. 이때 칼 말론의 절친한 친구 스카티 피펜이 슬며시 다가와 말론의 별명이 우편배달부이고 경기가 열리는 날이 일요일이라는 점을 이용해 '''"우편배달부는 일요일에 배달하지 않는다고~(The mailman doesn't deliver on Sundays)"'''라는 [[트래시 토크]]를 날렸고, 거기에 흔들렸는지 말론은 자유투 2구를 모두 놓치며 동점 상황이 유지되었다. 그리고 불스의 작전타임 후 마지막 공격에서 조던은 간단히 미들 점프슛 게임위닝 버저비터를 성공시키며 팀에게 승리를 안긴다. 버저비터 성공 직후 당연하다는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오른주먹을 불끈 쥐는 장면은 많이 회자되고 있다. 2021년 현재 기준으로 [[NBA 파이널]]에서 게임 위닝 버저비터가 나온 것은 이 경기가 마지막이다. 이후 불스가 2차전 홈 경기마저 잡으며 2-0으로 앞서가지만 재즈 홈으로 장소를 옮긴 3, 4차전에서 재즈가 반격에 성공하며 시리즈 스코어 2-2로 균형이 맞춰졌다. 역시 재즈 홈에서 열리는 5차전이 시리즈의 분수령이 되는 상황. [[1997 NBA 파이널|이 해 파이널 5차전]]은 일명 [[https://youtu.be/2os-hfXSUlA|Flu Game]]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당시 조던이 유니폼도 제대로 입지 못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심한 [[독감]]에 걸린 채로 경기에 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훗날 조던의 트레이너였던 팀 그로버에 따르면 감기가 아니고 [[식중독]]이었다고 한다. 유타 원정을 떠나 유타 원정때 늘 이용하던 Park City라는 소도시의 호텔에 묵고 있었는데, 밤에 배가 고파서 룸서비스를 시켰으나 9시가 지난 시각이라 룸서비스는 종료된 후였다. 그래서 야식으로 피자를 시켰는데 피자 한판 배달하는데 배달부가 다섯 명이나 온 것도 이상하고 맛도 이상해서 버리자고 했는데 마사장님은 처묵처묵...그로버는 2020년에도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서 그렇게 빨리 증상이 오는 독감은 없고 식중독이 확실하다고 말했으나 'food poisoning game' 보다는 'flu game'이 어감상 멋있긴 하다고 말하기도. 다큐멘터리 [[마이클 조던 - 더 라스트 댄스]] 9화에 해당 내용이 나온다. 여담이지만 숙취라고 보도한 언론사도 있었다고 한다(...) 다만 스카티 피펜은 이후 인터뷰에서 숙취설에 대해 일축한 바 있다. 이것도 여담이지만 2017년 플레이오프에서 유타 재즈의 고든 헤이워드가 식중독으로 경기에 뛰지 못하면서 조던의 대단함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사실 헤이워드가 정상인게, 식중독에 한 번 걸리면 농구는 커녕 제대로 걷기도 힘들다. 특히 조던처럼 가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고열까지 있는 경우는 더더욱...이걸 안고 그 빡센 NBA 경기를 소화했다는 건 부상투혼 수준이 아니라 상식 밖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기록은 38득점 7리바운드 6어시스트 3스틸 1블록에 동점 상황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3점 슛까지 성공시켰다. 아픈 인간이 웬만한 농구선수가 최상의 컨디션에서도 하기 힘든 기록을 냈다. 더욱 더 대단한 것은 기사나 경기 전 영상에는 조던의 컨디션이 분명 개판인 게 눈에 보였고, 플레이 중 쉬는 시간에는 분명 죽을 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때 플레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몸이 확실히 무거워 보인다. 공격할 때도 날카로운 돌파보다는 중, 장거리슛에 의존하는 성향도 있었다. 실제로 조던의 평상시 파이널 평균인 33.6점에 비하면 이 경기 기록은 그냥 평타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고 필드골 성공률도 낮은 편이다. 그런데도 조던은 투혼을 불사르며 경기를 승리로 이끈 것이다. 위에서 말한 대로, 만약 다른 선수가 파이널에 38-7-6에 위닝샷을 성공했다면 역대급 MVP 활약이라고 칭송받았을 정도의 기록인데, 이것을 명백히 아파 보이는 선수가 하니 다들 감동한 것. 어찌되었건 당시 조던은 경기 시작 전부터 땀을 비오듯 흘리고 벤치에 앉기만 하면 수건을 덮고 정신을 못 차리는 등 최악의 컨디션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table align=center><table width=700><table bordercolor=#d4001f><#ffffff>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MJ_FluGame.jpg|width=100%]]}}} || ||<#d4001f><:> {{{#ffffff '''“Flu Game”''' }}} || 결국 5차전 승리로 우세를 잡은 조던과 불스가 6차전까지 따내며 우승반지를 차지한다. 6차전 마지막 동점상황에서 조던은 [[스티브 커]]에게 "나에게 더블 팀을 들어오면 패스할 테니 준비해라"라고 말하고, 말한 그대로 경기종료 8초 전 커를 막고 있던 스탁턴이 조던에게 더블팀을 들어오자 조던이 커에게 패스, 커가 자유투라인에서 점프 슛을 성공시킨다. 둘의 사이가 상기한 대로 썩 좋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의미심장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티브 커의 회상에 따르면, 조던은 4차전에서 비슷한 상황이 있었을 때 커를 마크하고 있던 존 스탁턴이 자신을 더블팀하기 위해 달려왔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자신에게 그렇게 지시했다고 한다.] 마지막이 된 97-98 시즌, 팀 프런트와 불화에 시달리던 피펜이 연봉에 대한 불만도 더해져서 오프 시즌 중이 아닌, 시즌 개막 직전에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시즌 절반 가까이(38경기)를 결장했고, 이에 따라 조던의 공격비중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또한 [[데니스 로드맨]]이 전 시즌 플레이오프로부터 계속되는 부진과 노화문제로 신뢰를 잃으며 첫 한달간 16경기 중 6경기를 벤치에서 출장하며 팀이 위기를 겪기도 했다.[* 개막전부터 중위권 팀도 안되던 보스턴 셀틱스에게 7점차 패배를 당하기도 했는데, 이때 주전라인업은 조던-[[론 하퍼]]-[[토니 쿠코치]]-제이슨 캐피-[[룩 롱리]]였다. 로드맨은 벤치에서 24분 뛰며 10점 9리바운드를 기록.] 이 때문에 불스는 11월 한달 간 9승 7패에 그치며 90-91시즌 이후 (조던이 뛴 시즌 중에) 최악의 스타트를 끊어야 했다. 불스는 원래 우승권 팀 중 공격옵션이 제한적인 팀이었는데, 트라이앵글 오펜스가 막히면 마이클 조던의 1대1 공격에 의존하는 팀이었기 때문에 2옵션이자 메인 볼핸들러인 피펜이 빠지자 수비가 조던에게 집중되었던 것. [[스티브 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조던은 팀 부진에 분노하며 '복귀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답답해하는 등 분위기가 매우 안 좋았다고 한다. * 마지막 시즌 조던의 기량 - 이 시즌의 조던의 득점이 28.7점으로 10번 득점왕 시즌 중 가장 낮았고 야투율이 46.5%로 떨어진 것 때문에 노화가 심했다고 인식하기도 하는데, 실제 그의 경기력은 97시즌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초반에 피펜이 빠져서 상대의 수비집중도가 높아지고 수비부담이 늘어난 것 때문에 야투율이 하락한 것 뿐이다. 실제로 피펜이 복귀하기 전까지 야투율 44.9%, 복귀 이후론 47.8%로 야투율이 올라갔다. 또한 출장시간도 37.9분에서 38.8분으로 늘었다. 96-97시즌 29.6점/48.6%에 비하면 기록이 다소 하락하긴 했지만 노화를 의심할 정도는 아니었고, 플레이오프에선 97시즌 31.1점/45.6%에서 32.4점/46.2%로 기록이 올라갔다. 다만 나머지 기록은 7.9어시스트 4.8리바운드 1.6스틸 0.6블록에서 5.1리바운드 3.5어시스트 1.5스틸 0.6블록으로 떨어졌으니 '나이에 따른 소폭의 기록 저하는 있어도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정리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때 기량 저하를 감안해도 조던은 아직 확고부동한 리그 최고의 선수였고, MVP투표에서도 116표 중 92표를 얻으며 무난히 수상했다. 실제로 피펜이 결장 당시 조던의 야투율, 특히 3점 슛 성공률이 폭락했는데, 사실 조던은 90년대 초반에 이미 3점 슛 능력을 장착했는데도 이렇게 수치가 떨어진 것이 이상해보일 수 있고, 일각에서는 이를 '짧아진 3점 라인이 이 시즌에 원상복귀 되었기 때문이다'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만약 그랬다면 최소 1차 3연패 시절 수준의 성공률은 되었어야 한다. 조던은 최초로 경기당 3점 슛 1개 성공을 넘긴 89-90시즌부터 92-93시즌까지 경기당 평균 0.7개 성공, 34.3%를 기록했기 때문. 조던의 3점 슛이 극단적으로 떨어진 것은 당시 불스의 공격시스템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시카고 불스는 당시 기준으로도 3점 슛을 많이 던지는 팀이 아니었으며, 불스의 [[트라이앵글 오펜스]]로는 조던에게 3점 슛 찬스가 거의 나지 않는다. 트라이앵글 하에서 조던은 볼핸들러(피펜)에게서 볼을 받는 스트롱사이드 윙과 포스트맨(꼭지점)의 역할을 번갈아가면서 하게 되는데, 공격력이 무서운 선수가 조던밖에 없는 불스 특성상 이렇게 되면 오픈 찬스가 나는 선수는 위크사이드에서 윙플레이어나 조던이 꼭지점에 있을때 빅맨들이다. 반면 조던은 기본적으로 수비가 몰리게 된다.(이 몰리는 수비를 활용해 다른 선수들에게 오픈찬스를 내주는게 트라이앵글의 목적이기도 하다) 조던은 다른 선수들이 꼭지점 위치에 들어가 볼을 돌리는 동안 스크린을 활용해 수비를 떼내면서 오픈찬스를 노리게 되는데, 당연히 다른 선수에게 수비가 몰려야지 조던에게 오픈찬스가 더 많이 나게 된다. 여기까지 읽어보면 문제점을 파악했겠지만, 당시엔 조던을 위해 수비를 끌어올 만한 선수가 [[스카티 피펜]] 밖에 없었다. 당시 불스는 스크린을 타고 3점 찬스를 만드는 전술을 많이 쓰지 않았고[* 불스에서 3점 능력이 가장 뛰어났던 [[스티브 커]]와 존 팩슨 둘 다 스크린을 타고 수비를 떼어내는 선수들이 아니라 킥아웃 패스를 받아먹는 선수들이었다. 이 둘, 특히 팩슨이 조던과 궁합이 워낙 잘 맞았던 것도 이것 때문인데, 팩슨은 본인이 공격력이 일천하단 것을 알아 조던이 볼을 독점해도 별 다른 불만이 없었고 빼주는 공을 정확하게 슛으로 연결해주었기 때문. 반면 이 과정에서 불만을 가진 선수가 볼을 갖고 하는 플레이를 더 하길 원했던 B.J. 암스트롱이었다.], 조던의 3점은 대부분 수비를 달고 쏘거나 수비가 동료에게 몰린 틈을 타 패스를 받아 쏘는 킥아웃이었는데, 피펜의 공격력이 늘어나면서 조던이 3점 슛을 하나의 옵션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리그에서 알아주는 득점원이 된 피펜 덕분에 조던도 어느 정도는 오픈찬스를 누리고+짧아진 3점 라인 덕분에 복귀 이후부터 96-97시즌까지 경기당 1.3개 성공, 40.4%를 기록했다. 그러나 피펜이 빠지자 문제가 생겼다. 조던은 팀 내에서 피펜에 이은 secondary ball-handler이었고, 피펜이 빠진 라인업에선 메인 볼핸들러를 하면서 당연히 스트롱 사이드에서 윙과 포스트맨의 역할까지 해야했다. 또한 당연히 킥아웃 찬스가 나기 힘들었고, 스크린을 타고 오픈을 만들더라도 3점 라인 밖에서 오픈 찬스는 거의 없었다. 수비를 끌어올만한 외곽슈터도 없고[* 위에서 커가 언급되었지만 스티브 커는 통산 경기당 6점, 이 시즌엔 평균 7.5점을 기록한 선수였고 커리어하이가 9점을 못 넘기는 선수이다. 뛰어난 외곽슈터가 수비를 분산시켜줄 수 있는 것은 맞지만 발도 느리고 스크린 활용능력도 평범한데 슛'''만''' 잘하는 선수는 별 위력이 없다. 커가 기계처럼 정확한 슈팅에도 평생 주전으로 나온 경기가 30경기, 시카고 시절엔 단 하나도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공격력이 탁월하진 않지만 외곽능력이 있어 압도적인 공격수([[르브론 제임스]])의 부담을 덜어주었던 [[모 윌리엄스]]의 경우, 클리블랜드에 합류하기 전에 이미 평균 17점씩 넣는 수준급 스코어러였다. 이 정도는 되어야 수비가 의식하고 분산된다.], 괜찮은 득점력이 있는 동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수비가 몰리는 상황에선 필드골 성공률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작지만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토니 쿠코치]]인데, 사실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트라이앵글 오펜스는 쿠코치의 위력을 잘 살릴 수 있는 전술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 한달동안 쿠코치는 12.9점 야투성공률 43.2%에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후 피펜이 복귀하던 1월 10일 전까지 쿠코치는 15.4점/47.2%로 (아직 위력이 모자라지만) 조금 더 안정적인 2옵션 역할을 해줬다. 작은 변화처럼 보이지만 저 정도의 수비 분산으로도 조던의 경기력엔 상당한 영향을 미쳤는데 첫 한달동안 조던은 27.6점에 야투 42.8%를 기록했으나, 저 두 번째 구간동안은 29.7점/46.8%를 기록했다. 위에 언급된대로 팀성적이 올라간 것은 덤. 계속 설명되는 부분이지만 팀에서 단 한 명만 슛이 들어간다면 트라이앵글은 절대 돌아갈 수가 없다. 피펜의 복귀 이후 조던의 숨통이 확 트이게 되지만 사실 피펜은 97-98시즌을 기점으로 득점원으로서의 위력이 확 줄게 된다. 피펜은 1997 오프 시즌에 발목수술을 하게 되는데, 97년에 32세가 된 피펜의 운동능력은 아직 상당한 수준이었지만 돌파와 포스트업의 빈도수가 점점 줄기 시작했고, 원래부터 고질적으로 약한 부위였던 등 문제가 점점 심해지면서 중장거리슛 비중이 점점 늘게 된다.(3점 슛 자체는 차이가 없었지만 기본에 돌파나 단거리슛으로 처리하던 것을 20피트 정도 중거리에서 마무리하는 플레이가 늘었다) 문제는 피펜이 슛거리는 길고 터질 땐 터지지만 안정적으로 잘 쏘는 선수가 아니란 것. 슛 기복이 심한 선수가 중장거리를 많이 던지니 야투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실제로 피펜은 데뷔 이후 96-97시즌까지 48.5%를 기록, 단 한 번도 46.3% 밑으로 떨어져본 적이 없고 97시즌엔 47.4%를 기록한 선수였지만 97-98시즌에 44.7%를 기록하게 된다. 사실 이 시점에서 조던의 3점 옵션은 거의 봉인되는거나 다름없다. 트라이앵글은 오픈 중거리슛 찬스를 만드는 득점이고, 시카고에서 3점 슛은 거의 대부분이 수비가 에이스들에게 몰린 후 킥아웃 해주는 것을 받아먹는 슛이었는데, 조던에게 킥아웃해줄 만큼 수비를 끌어올 수 있는 선수는 없었기 때문. 당시 조던의 실력이 건재했음에도 미스테리하게 슛성공률이 떨어진데는 이런 뒷사정이 있었다. 게임처럼 단순히 선수가 못하게 되어서 슛성공률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전라인업에 복귀한 로드맨이 (재계약 문제로 인한 불만을 억누르고) 성실히 뛰어주고, 피펜이 빠진 라인업에 선수들이 적응하면서 12월에는 11승 3패, 8연승을 연달아 달리는 등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다. 덕분에 최악의 스타트에도 불구하고 올스타 주말 전까지 동부 컨퍼런스 1위이던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턱밑까지 추격하는 등 성적을 회복했고, 이후 후반부에 페이스가 떨어진 인디애나를 제치고 62승으로 3년 연속 동부 컨퍼런스 1위를 수성하는데 성공했다. 이 와중에 자신의 12번째 올스타전에 출전한 조던은 당시 올스타 통산 스틸 1위기록을 [[아이제아 토마스(1961)|아이제아 토마스]]로부터 뺏어오며 자신의 통산 3번째 올스타전 MVP를 수상했다. 그러나 성적과 별개로 불스 왕조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GM 제리 크라우스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대놓고 "필(잭슨 감독)은 이번 시즌이 마지막이다"라고 공언할 정도였으며, 조던 역시 잭슨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황. 시즌이 진행되고 성적이 호전됨에도 잭슨과 크라우스, 조던 간의 갈등은 봉합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며, 이미 자신의 연봉에 수년간 불만을 표한 피펜, 오프 시즌에 재계약 문제를 놓고 갈등을 겪다가 오프 시즌 종료 직전에야 사인한 [[데니스 로드맨]] 역시 팀 프런트를 곱게 보지 않고 있었다. 당시 불스 팀원들 간의 케미스트리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오히려 대다수가 노장인 불스 멤버들은 "이번이 마지막"이란 의식을 갖고 열심히 뛰었다. 좋은 실력과 별개로 꾸준히 사고를 쳐온 데니스 로드맨은 (시즌 중반에 휴가 가겠다고 억지 부려서 빠진 것을 제외하곤) 불스 이적 이후 가장 성실히 뛰었다.], 프런트와 극심한 갈등으로 인해 팀 자체가 유지되기 힘든 상황. 잭슨, 조던, 피펜, 로드맨, 거기에 [[룩 롱리]]와 [[스티브 커]] 등 주요 롤플레이어들 역시 시즌 이후 자유계약 선수가 되는터라 불스 왕조가 더 이상 유지되는 건 불가능해보였다.[* 사실 근본적인 원인은 제리 라인스도프 구단주였다. 마이클 조던-라스트 댄스에서도 나온 내용이지만 라인스도프는 큰 돈을 써가며 불스 왕조를 유지할 계획이 없었고, 98년을 마지막으로 자유계약 선수가 되는 33세 노장 피펜에게 거대장기계약을 쥐어줄 생각이 없었다. 이미 노쇠화 기력이 역력했던 로드맨도 마찬가지. 그가 무조건 잡고 싶어했던 선수는 조던 뿐이었지만, 조던은 조던대로 잭슨, 피펜, 로드맨이 다 떠난 리빌딩 팀에서 말년에 고생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조던은 우승권인 불스왕조를 유지하고 싶어했지만, 스포츠 매니아기보다는 비지니스맨은 제리 라인스도프는 큰 돈을 써서 우승을 노리느니 차라리 리빌딩을 원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라스트 댄스"에서 "나는 사실 잭슨을 잡고 싶었다"는 라인스도프의 립서비스를 듣고 조던이 울컥한게 이 때문. 진짜 그가 잭슨을 잡고 싶었다면 시즌 내내 크라우스가 "이번 시즌이 잭슨 마지막"이라고 하고 다니는 걸 용납했을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다.] 여차저차해서 맞이한 98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 상대인 뉴져지 네츠에게 의외로 1차전 접전을 허용했지만 연장전 마지막 네츠의 공격권에서 조던이 케리 키틀즈의 공을 스틸하고 결승 덩크 슛을 성공시키며 승리했고 이후 스윕으로 2라운드에 올라가게 된다. 2라운드는 조던의 옛 동료 BJ 암스트롱이 버티는 [[샬럿 호네츠]]로, 암스트롱이 위닝샷을 터뜨리며 2차전을 뺏기지만 이후 어렵지 않게 나머지 경기들을 승리하며 불스는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 오른다. 상대는 인디애나 페이서스. 사실 [[레지 밀러]]는 조던의 라이벌 중 하나로 꼽히지만 이들이 플레이오프에서 맞붙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러나 클러치 대마왕으로 유명한 밀러의 명성은 불스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시리즈는 특이하게 모든 경기가 홈팀의 승리로 끝났는데, 시즌 후반부 페이스를 끌어올려 인디애나로부터 뺏은 홈코트 어드밴티지가 그만큼 더 중요했다. 시리즈의 터닝포인트는 4차전, 불스가 홈에서 어렵지 않게 2승을 한 가운데 3차전은 2점차 페이서스의 승리였고, 불스는 종료를 앞두고 1점차로 앞서고 있었다. 이때 레지 밀러는 마크맨 론 하퍼를 더블스크린으로 떼어내고 커버 들어온 조던을 양팔로 강하게 밀쳐낸 후[* 밀러가 자기보다 훨씬 무겁고 강한 조던을 밀쳐내기 위해 대놓고 양팔로 밀어 오펜스 파울 논란이 있는 플레이인데, 당시 밀러는 "클러치 상황에선 웬만해선 오펜스 파울을 불지 않는다는 것을 노렸다"고 언급한바 있다.] 클러치 3점 슛을 성공시키며 시리즈를 원점으로 만들었다. 사실 이 플레이 이후 0.4초가 남아 불스의 역전 기회가 있었는데, 어렵사리 공을 건네받은 조던이 페이서스의 집중수비를 더블클러치로 떼어내고 던진 3점 슛이 백보드를 맞고 림을 한 바퀴 돌아 아깝게 빗나가는 바람에 패배하게 된다.[* 당시 골밑에 있었던 레지 밀러는 "어라? 들어가잖아?"라고 생각했다고 훗날 회고했다.] 6차전을 불스가 3점차로 석패한 이후 맞이한 7차전, 조던을 포함한 불스는 빈공에 시달렸고, 불스는 4쿼터 중반까지 끌려다니며 팬들이 '이제 불스왕조가 끝이 아닌가'란 생각이 강하게 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야투 11개 중 7개를 넣은 토니 쿠코치, 슛감은 안 좋았지만 리바운드와 수비에서 활약하며 팀을 이끈 조던과 피펜[* 둘은 공격적으로 골밑싸움을 하며 각자 공격리바운드를 5개, 6개씩이나 잡아낸다. 피펜은 양팀 최다인 12리바운드 기록.], 그리고 4쿼터 중반에 천금같은 역전 3점 슛을 넣은 [[스티브 커]] 등의 활약으로 불스는 기어이 승리를 따낸다. 마이클 조던은 슛이 안 들어가자 집요하게 골밑돌파를 하며 양팀 통틀어 최다인 15개의 자유투를 얻어내면서 양팀 최다인 28점, 8어시스트를 거의 쥐어짜듯이 뽑아내고 9리바운드를 겻들여 거의 트리플 더블급 활약을 한다. 특히 수비에서 더욱 빛나는 모습을 보였는데, 평상시 잭슨 감독은 공격에서 부담이 큰 35세 노장의 체력안배를 위해 밀러 수비를 론 하퍼에게 맡겼다. 그러나 이 경기에선 조던이 수비를 번갈아가며 했고, 승부처가 된 4쿼터에선 아예 조던이 전담해 막았다. 밀러는 이 경기에서 22점을 기록했지만 조던이 막을 때는 필드골 단 하나만을 넣었고, 조던이 전담수비한 4쿼터에선 9분27초나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득점''', 3점 슛 단 한개 시도/0개 성공이라는 초라한 기록을 남겼다.[* 조던은 밀러같은 선수에게 거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선수였다. 밀러는 운동능력이 비교적 평범하고 1대1 공격력이 떨어지는 대신 동료들의 스크린을 활용하는 능력이 천재적이었는데, 조던은 역사상 스크린을 가장 잘 깨는 선수 중 하나였기 때문. 스크린을 피할 때는 상대가 스크린을 거는 위치와 타이밍을 읽고 예측해 피하거나, 민첩성을 살려 기습적인 스크린을 피하거나, 어쩔 수 없이 부딫혀야 되면 힘으로 (오펜스 파울이 안될 정도로) 밀치고 나오는 것이 중요한데 조던은 세 가지 모두 역대급으로 잘하는 선수였다.] 어쨌거나 35세의 노구를 이끌고 양팀 최다인 42분을 뛰며 (슛감은 안 좋았지만) 골밑돌파, 리바운드, 어시스트, 수비 등 다방면에서 활약한 조던은 마침내 팀을 파이널에 올려놓는다. 1998 파이널 상대는 유타 재즈였지만, 선수들의 노쇠화와 필 잭슨 감독과 제리 크라우스 GM과의 갈등 등으로 인해 홈 코트 어드밴티지는 유타 재즈의 것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1차 3연패 때도 마지막 92-93 시즌에는 상대였던 피닉스 선즈가 홈 코트 어드밴티지를 갖고 있었다.] 게다가 정규 시즌에 유타 재즈 에게 모두 패했다. 평균연령이 리그에서 가장 높은 축에 들던 불스는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래리 버드]] 감독과 [[레지 밀러]]가 이끈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만나. 4차전에서 레지 밀러에게 역전 3점 슛을 얻어맞고 지는 등 7차전까지 가는 혈전을 벌인 끝에 간신히 올라왔다. 반면 상대였던 유타 재즈는 2라운드에서 4-1,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4-0으로 승리를 거두고 푹 쉬어 체력 충전까지 완전히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딱 이틀 쉰 불스에 비해 재즈는 무려 열흘을 쉬었다. 일주일이 넘는 기간동안 아무 부담없이 시카고가 혈투 벌이는 걸 말 그대로 구경한 것. 두 팀 모두 주축들이 노장들이라 체력적 어드밴티지는 매우 중요했다. 게다가 재즈는 파이널 전까지 6연승을 거두며 모멘텀 측면에서도 최고조에 이르렀다.] 결국 1차전을 연장 끝에 88-85로 패해 체력소진의 우려가 현실이 되는가 했지만, 이후 내리 3연승을 거두며 오히려 분위기를 완전히 가져왔다. 특히 3차전[* 98-99시즌 모델인 에어 조던 14 라스트 샷을 처음 착용했다. 지금이야 [[케빈 듀란트]], [[스테판 커리]] 등 후기 시즌 모델을 미리 공개하여 당기 플레이오프에서 신고 나오지만 당시 시그니처 모델을 가진 선수는 당해시즌에만 착용했다. 즉 조던은 이미 이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생각했기때문에 14 매출하락을 미리 대비하여 1998 파이널에 신는 마케팅 능력도 보여주었다. 물론 1995년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1995-96 시즌 모델인 에어 조던 11을 착용했지만 당시 조던은 페니, 오닐의 올랜도에 꽤 고전하였 등번호를 45에서 다시 23으로 바꾸는 등 분위기전환 용도로 사용했다.]은 상대의 득점을 '''54점'''에 묶었는데 이는 파이널 최소 득점 기록이다. 그러나 홈에서 우승을 차지하려는 계획이 말론의 39점 활약에 힘입어 막히고 마지막 6차전을 유타 홈에서 치르게 된다. 마지막 1998 NBA 파이널 6차전은 체력이 한계에 달할 대로 달한 데다가 게임 초반에 스카티 피펜이 등 부상을 입어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그 상황에서 역시 조던이 경기를 캐리하기 시작했다. 이때 조던은 45점을 득점했는데, 팀 전체 득점의 절반 이상일 뿐만 아니라, 두 번째 다득점자인 토니 쿠코치는 15점에 그쳤을 정도. [[http://www.basketball-reference.com/boxscores/199806140UTA.html?redir|박스스코어]]만 보면 원맨팀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피펜 역시 상기한 대로 경기 초반에 덩크 슛을 하다 등을 삐끗해 평상시 강력한 수비를 보여주지 못했고, 다른 선수들은 존 스탁턴을 필두로 젊고 빠른 [[가드(농구)|가드]]들이 포진한 유타의 수비에 고전했다. 마지막 동점상황에서 역시 클러치로 유명한 존 스탁턴에게 3점 슛을 얻어맞고 3점 뒤지고 있던 상황, 시간은 40여초 남아있었다. 조던은 작전타임 후 혼자 공을 몰고 레이업[* 공격시작 후 4초만에 득점을 성공시켰다. 설령 재즈가 다음 공격에서 24초를 모두 소모해도 마지막 공격권이 불스에게 있었을 상황이었기에, 재즈에게 '반드시 공격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압박을 줄 수 있는 플레이였다.] - 갑작스러운 더블팀으로 칼 말론의 공을 스틸 - 당연하다는 듯이 결승 점프 슛 성공을 통해 혼자 4점을 넣는 활약을 보였다. ||<table align=center><table width=600><table bordercolor=#d4001f><#ffffff>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BrowserPreview_tmp3.gif|width=100%]]}}} || ||<#d4001f><:> {{{#ffffff '''"17 seconds from game 7 or championship number 6."''' '''"17초후 저흰 7차전을 보게되거나 6번째의 챔피언십을 보게될 것 입니다."''' - 해설자 }}} || 마지막 장면에서 크로스 오버 드리블로 수비수의 균형을 무너뜨려 따돌린 후 점프슛을 한 조던의 슛폼은 유난히 여운이 남는 장면이라고 기억되고 있다. ||<table align=center><table width=700><table bordercolor=#d4001f><#ffffff>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the last shot.gif|width=100%]]}}} [[파일:external/f.ptcdn.info/1400725830-thegreates-o.jpg|width=100%]] || ||<#d4001f><:> {{{#ffffff '''The Last Shot''' }}} || '''결국 [[3-peat]]을 두 번째로 달성하고, 정점에서 다시 은퇴한다.''' 이 마지막 장면에 대해 굉장히 말이 많고, 당시 경기를 중계했던 [[아이제아 토마스(1961)|아이제아 토마스]]도 "팔로 허벅지를 밀었지만 심판이 못 봤다. 조던은 저런 작은 테크닉도 부리는 선수다."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현재까지도 논란거리이다. 이 장면 이외에도 아이즐리의 3점 슛이 24초 바이얼레이션에 걸려 취소되거나, 하퍼의 24초 바이얼레이션 미지적, 피펜의 골텐딩도 오심 논란이 있다. 이에 당사자인 브라이언 러셀은 [[https://www.yahoo.com/news/russell-jordan-game-062800757--nba.html|수없이 많은 질문을 받았지만, 심판은 파울을 부르지 않았고, 이제 그 일은 과거의 일이다. 그리고 나는 농구 역사에 남을 위대한 플레이의 한부분으로 남을수 있어 자랑스럽다."]] 고 말했다. 사실 NBA에서 돌파하는 선수가 오프 핸드, 즉 공을 드리블하지 않는 손을 슬쩍 쓰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특히 상대 손질을 뿌리치는 용도, 스핀 무브를 할 때] 조던은 물론이고 코비, 르브론, 웨이드 등 슈퍼스타들이라면 누구나 크고 작은 손장난(?)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장면이 하필 왜 이슈가 되느냐면 이 샷으로 인해 우승이 결정났기 때문이며 수십, 수백번이나 슬로모션으로 반복 재생되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뒤에서 보지 않고 풀샷으로 보면 조던의 손이 분명 러셀의 엉덩이에 닿았지만 러셀은 이 손에 밀려 넘어진게 아니라 조던의 돌파를 따라가다 그가 갑작스레 멈춰서자 똑같이 방향을 전환하다가 미끄러졌다. 조던이 밀어서 넘어졌다기보다는 소위 말하는 "앵클 브레이킹"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농구는 원칙적으로 신체접촉을 금지하는 스포츠이지만, 실제론 몸과 몸이 부딫히는 과정에서 크고작은 접촉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스포츠이다. 바로 전 득점 장면인 마이클 조던의 레이업만 보더라도, 러셀이 핸드체킹을 하는 것 외에(핸드체킹은 당시 룰로선 합법이었다) 손을 뻗어 리치인하는 모습이나 레이업을 하는 순간 왼팔로 조던의 왼팔(슈팅핸드인 오른손은 공의 일부로 간주되지만 그 반대팔)을 살짝 쳤다가 흠칫 손을 빼는 걸 볼 수 있다. 작은 접촉이었기에 실시간으로 봤을 때는 티가 나지 않았지만, 슬로모션으로 보면 알 수 있다시피 분명 컨택이 있었다. 조던의 라스트샷도 마찬가지다. 티가 나지 않을 정도의 작은 컨택이었지만(이 때문에 재즈 선수단도 항의를 안 한 것이다. 러셀 본인도 항의 안 한 것을 보면 느끼지도 못했을 수 있다), 슬로모션으로 보니까 컨택이 있었다는게 밝혀진 케이스. 이런 것까지 전부 잡으면 다이나믹한 농구 진행은 불가능하다. 핸드체킹룰이 금지된 현재에도 저런 미세한 접촉을 다 잡진 않는데, 하물며 당시엔 핸드체킹이 합법이라 현재(2020년대)보다 외곽 공격수와 수비수가 훨씬 신체접촉이 잦던 시점이었다.] 무엇보다 조던이 샷을 성공시킨 직후 유타는 타임아웃을 불렀지만 러셀을 포함한 유타 선수들 누구도, 감독인 제리 슬로언도 심판에게 항의하지 않았다. NBA선수들은 심판에 대한 항의가 일상화된 양반들이다. 오죽하면 2000년대 중반에 심판판정에 심하게 어필하면 자동으로 테크니컬 파울을 주도록 규정을 바꿨겠는가. 어떤 선수들은 항의하다가 실점하기도 하고, 특히 이처럼 타임아웃이 불린 상태에서는 급히 수비하러 돌아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벤치로 가면서 억울하다는 제스쳐와 함께 항의하는 것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정착 밀쳐진(?) 당사자조차 심판에게 어필하지 않았다는 것은 본인도 자기가 미끄러진 이유가 조던 때문이라고 느끼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 당시 은퇴는 첫 번째 은퇴만큼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NBA가 파업으로 치닫고 있었고, 조던과 필 잭슨의 계약이 만료됨으로 인해 공공연하게 [[3-peat]] 후의 정점에서 은퇴할 것이란 추측이 이미 산처럼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1998 파이널 중계만 보더라도 "The Last Shot"을 본 NBC의 밥 코스타스가 "몇 달 후의 일은 누구도 모르지만, 저 슛이 조던의 마지막 슛일 수도 있다." "만약 저게 조던의 마지막 이미지라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스포츠 방송에서 공공연하게 언급될 정도로 다들 예상은 하고 있었다는 것.] 실제로 조던은 농구에 대한 의욕과 승부욕, 상승욕을 상실한 상태였다고 한다. 3년 연속 우승 후에, 은퇴해서 [[야구|다른 일]] 하고 왔음에도, 또 다시 3년 연속 우승을 이룬 이라면, 당연히 찾아올 더 이상 무엇을 이루어야 할지 알 수 없는 권태감에 시달렸던 것이다. 특히나, 병적일 정도로 승부욕이 강했던 그라면 권태감은 더 심했을 거라고 추측된다. 팀 내부 분위기에서도 제리 크라우스 단장과 필 잭슨의 대립이 절정에 달하는 등 '이 시즌이 우리의 마지막이다'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었다. 좋은 예로 필 잭슨이 시즌을 시작하며 선수단에 나눠준 다이어리에는 '''Last Dance'''라고 적혀있었다고 전해진다. 첫 번째 은퇴에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을 표한 것과는 다르게, 두 번째 은퇴에 관해서는 팬이나 농구관계자, 스폰서 모두가 정점에서 멋지게 퇴장하는 그를 위해 박수를 보내주었고, 세계 각지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심지어 [[MBC]]에서 그의 은퇴 다큐멘터리를 직접 제작, 방영할 정도였다면 그 분위기는 대충 감이 올 것이다. 우리나라를 위해, 혹은 우리나라에서 뛴 적 한 번 없는 운동선수의 은퇴기념 다큐를 지상파에서 제작 방영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조던의 위엄. [[3-peat]] → 은퇴 → 3-peat이라는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 업적을 쌓은 그는, 더 이상의 기록은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듯이 그렇게 떠났다. 다만 이때 당시 조던은 선수로서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확고히 굳힌게 아니고, [[시카고 불스]]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뉴욕 닉스]]로 팀을 옮기는 방안과 선수 은퇴 두가지 방안중에 고민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97-98시즌 초반 피펜이 부상으로 거의 시즌 반을 날려먹고 로드맨도 자주 결장하면서 팀 성적이 이전 2시즌보다 많이 하락하던 와중에 뉴욕 닉스와 루머가 떴다.[* 그러나 사실 닉스와의 루머는 2차 3연패 기간 내내 있었다. 95년 72승 시즌 중에도 시즌 종료 후 이적할 가능성이 있다며 기사화되고 한국에 보도되기도 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120600209115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5-12-06&officeId=00020&pageNo=15&printNo=23046&publishType=00010|당시기사]] 당시 조던은 95-96 시즌에 장기계약이 끝났고, 그 이후 2년은 단년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떨어진 성적이 62승 20패라지만 시즌 중후반에 승률을 끌어올린 것이지, 시즌 초중반엔 진짜 좋지 않았다.] [[뉴욕 닉스]]와 [[패트릭 유잉]] 항목에도 있듯 조던은 근 10여년간 닉스를 가로막은 장본인이었지만 뉴욕 팬들은 97 - 98시즌 조던의 MSG 마지막 경기에서 자기 팀을 박살내고 나가는 조던에게 기립박수를 쳐줄 정도로 조던에게 굉장히 우호적인 팬들이었고 조던 본인도 [[브루클린]] 출신인데다가 [[패트릭 유잉]]과도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닉스행을 고려했지만 조던이 시가를 자르다가 오른손 손가락 힘줄이 끊어지는 부상을 당했으며, 무엇보다도 97 - 98시즌이 끝나고 선수 노조 파업으로 인해 다음 시즌이 어떻게 될 지 불투명해지면서 그냥 깨끗하게 은퇴를 선언했다는 것인데, 물론 조던이 명확히 밝힌 바는 없다. 그리고 닉스와의 루머와 상관없이 애초에 조던이 1차 복귀할 때부터 3시즌만 뛰고 은퇴하겠다고 밝혔고 그 약속을 그냥 지킨거라는 말도 있다. 단적으로 앞서 언급된 98시즌 MSG 원정에서 조던은 프로 초창기 이후 처음으로 데뷔 시즌의 에어 조던 1을 신고 출전했었다. 뉴욕에 대한 애정을 보여준 부분인데, 당시 미디어들과 팬들은 이걸 보고 조던이 은퇴 전 마지막 뉴욕 원정을 기념하고 뉴욕 팬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신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https://sneakernews.com/2012/10/25/michael-jordans-last-game-at-madison-square-garden-as-a-chicago-bull/|#]] 데뷔 당시의 신발이라 작기도 하고, 쿠셔닝도 없어서 불편한데도 신고 경기에 출전한 것인데, 누가 봐도 작별인사가 아닌 다음에야 굳이 이런 퍼포먼스를 벌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라스트 댄스 다큐멘터리 10화에서 나온 마이클 조던의 인터뷰에 따르면, 7번째 우승을 위해 1년 더 뛸 의향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팀의 주축 멤버를 남기기 위해서 보다 많은 계약금을 지불해야 했던 제리 라인스도프 구단주로서는 리빌딩으로 방향을 선회. 또한, 결정적으로 팀의 융화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필 잭슨]]이 더이상 팀을 맡기를 거부함으로써, 조던으로써도 여러 상황상 은퇴를 결정하게 되었던 듯 하다. 제리 라인스도프 구단주의 인터뷰를 본 조던은 시즌 초반부터 구단이 "필 잭슨 감독은 이번 시즌이 마지막이다 리빌딩이다"라며 쓸때 없는 소리들을 했고 마지막 7번 째를 목표로 1년 짜리 계약을 제시 했으면 다들 계약하고 성공하던 실패하던 도전은 해봤을 거라고 말하며 아쉽게 회상했다. 자기는 7번째도 가능했을거 같다고. 실제 장면을 보면 아쉬운 정도가 아니라 라인스도프의 인터뷰를 보자마자 울컥하며 순간 말을 잇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라인스도프는 "필에게 재계약 오퍼를 했지만 그가 리빌딩 팀을 맡기 싫다고 했다"고 은근히 책임회피를 했는데, 저건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헛소리기 때문. 구단은 개막 전부터 제리 크라우스의 입을 통해 "이번 시즌이 필 잭슨의 마지막 시즌이다"는 걸 수차례 언급했고 (루머나 입장 발표가 아니라 크라우스 본인이 기자들 앞에서 몇번이나 얘기한다) 심지어 크라우스는 본인 딸 결혼식에 불스를 전부 초청하면서 감독 필 잭슨만 빼고 후임 감독으로 내정한 팀 플로이드를 초대했다. 근데 저 상황에서 잭슨과 재계약하면 '''크라우스가 엄청난 바보가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인터뷰에서도 잭슨은 "크라우스의 입장 때문에 계약할수가 없었다"고 한다. 받아들이면 안 그래도 안 좋은 사이가 최악이 될테니까. 심지어 크라우스는 "82연승해도 재계약 없다"고 한 상황. 중요한 건 라인스도프는 이 모든 걸 묵인했다는 것이다. 구단주의 묵인 없이 고용인에 불과한 단장이 감독과 재계약이 없네마네 떠들고 다닐 수 있겠는가? 라인스도프는 91년 쿠코치 영입 전 당시 시즌 중 유고슬라비아에 쿠코치를 보러갔다가 빡친 피펜이 언론 인터뷰로 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자 귀국하자마자 피펜과 면담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단장이 "감독과 재계약 없다"고 개막부터 시즌 내내 떠들고 다니는데 아무 제제가 없다? 당연히 본인의 뜻이란 소리다. 팀의 감독이 떠난다는 소식을 통해 시즌 내내 팀을 흔들다가 시즌 끝나고 재계약을 하자고 한다? 당연히 면피용 오퍼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조던은 당시 리그 최고의 선수였는데 이 상황 때문에 은퇴했고, 라스트 댄스에서 은퇴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근데 이 상황을 만든거나 다름없는 인간이 "어 난 또 하고 싶었는데 재계약 안한다고 하더라고?"하면서 책임회피하니 열이 안 터질 수가 없다. 사실 이쯤 되면 잭슨과 재계약을 하자는 소리 자체가 진심인지도 알 수 없다. 위에 나왔지만 잭슨이 남으면 조던은 무조건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랬다면 불스 왕조의 주축들은 전부, 최소한 대부분 남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시카고 불스]]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돈을 물 쓰듯 써서 우승을 노리는 전략은 비지니스 적으로 그리 옳은 선택은 아니고, 라인스도프는 철저한 비지니스맨이자 짠돌이이다. 피펜을 싸게 잡아둘 때야 좋았지만 피펜에게 고액연봉을 줘야하는 상황에서는 팀 전체의 연봉이 부담이 됐을 것이다. 그가 리빌딩을 노골적으로 원한게 이것 때문. 불스는 시카고라는 마켓 때문에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는 흥행이 되는데, 리빌딩용 선수들이면 연봉을 적게 줘도 되기 때문이다. 라인스도프 입장에선 장사가 되는 조던 한 명만 잡고 리빌딩하는게 좋았겠지만, 조던 입장에서 말년에 원맨팀에서 고생하는 걸 바랄리가 없다. 이걸 생각하면 원래부터 라인스도프는 왕조를 해체시킬 마음이 굳건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애초에 시즌 전부터 안 잡는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닌 상황에선 잭슨 재계약이 사실상 불가능했으니... 사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99년 CBA 협상의 결과로 인해 라인스도프는 1997-98 시즌보다 적은 돈으로 왕조를 유지할 수도 있었다. 당시 CBA로 선수 연차에 따라 한 선수에게 줄 수 있는 연봉의 상한선이 정해졌는데(기존 계약이 무효화되는 건 아니었다) 새롭게 계약할 수 있는 최대액수가 연 1천4백만이었다.(다만 단축시즌이라 그만큼 수입이 줄어든 건 감안해야 한다) 게다가 피펜이 새로 한 계약도 천만 달러 수준이었으니, 아무리 넉넉하게 봐도 두 선수가 받아갈 돈은 98시즌 조던의 연봉보다 적다. 물론 1997 오프 시즌 당시 이걸 예측할 수 있을리 없으니 새 시즌에도 조던을 잡으려면 3천만불 넘게 써야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table align=center><table width=700><table bordercolor=#d4001f><#ffffff>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MJ_6rings.gif|width=100%]]}}} || ||<#d4001f><:> {{{#ffffff '''“반지가 6개~~”'''[* 참고로 위의 장면은 1998년이 아니라 97년에 5번째 우승을 차지한 직후의 장면이다. 홈에서 우승한 후 카메라를 향해 '6번째 우승을 향해 ㄱㄱ'라는 식으로 장난친 거였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 || im preview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함으로써, 사용자는 본인이 기여한 콘텐츠가 CC BY-NC-SA 2.0 KR에 따라 배포되며, 해당 콘텐츠에 대한 저작자 표시를 하이퍼링크나 URL로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또한, 이 동의는 기여한 콘텐츠가 저장되고 배포된 이후에는 철회할 수 없음을 명확히 이해하고 동의합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18.118.210.6)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